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레 미제라블(뮤지컬) (문단 편집) === 프랑스 초연부터 브로드웨이까지 === 작사가 알랭 부브릴, 장-마르크 나텔과 작곡가 클로드-미셸 숀베르그가 [[빅토르 위고]]의 소설 [[레 미제라블]]을 바탕으로 만든 [[뮤지컬]]. 공연이 올라가기 전에 콘셉트 앨범을 미리 발매했는데, 이 앨범에서 작곡가 숀버그는 [[아베쎄의 벗들]] 중 하나인 쿠르페락(Courfeyrac) 역을 맡았다. 단, 실제 공연에서 쿠르페락 역을 맡은 사람은 숀버그가 아니다. [[1980년]] [[프랑스]] [[파리(프랑스)|파리]]에서 초연되었고 3개월 정도 공연을 했다. 작품성은 좋았으나 인기가 없어서 대관료를 내지 못해 공연을 내렸다는 루머가 있지만, 뮤지컬와 영화 레 미제라블의 역사를 다룬 책인 에 따르면 애초에 초연은 극장에 예기치 못하게 3개월의 공백이 생기자 급하게 올려진 공연이었고, 총 50만 명의 관객이 관람한 성공작이었다고 한다. 후일 이들이 제작한 캐스트 레코딩을 들은 [[영국]]의 뮤지컬 프로듀서 [[캐머런 매킨토시]]가 작품에 관심을 보이며 프로듀싱을 맡았고, 허버트 크레츠머의 영어 가사 번안[* 이 때문에 알랭 부브릴은 정확히 말하자면 작사가가 아니라 각본가 정도의 위치가 되었다.]으로 음악과 대본을 대폭 손질하고 로열 셰익스피어 극단(Royal Shakespeare Company)의 예술감독 트레버 넌(Trevor Nunn)의 연출을 가미하여 메가 뮤지컬이라 불릴만한 대형 공연으로 만들어 [[1985년]] [[10월]], [[런던]]의 바비칸 극장에서 다시 올렸다.[* 당시 바비칸 극장은 로열 셰익스피어 극단(이하 RSC)이 주로 공연을 열던 극장이었는데, 당시 대극장 흥행작이 없어서 고사당할 위기였던 RSC는 레미즈 대박으로 되살아났다.] 오늘날 사람들이 알고 있는 '뮤지컬 레미제라블'은 1985년의 런던 캐스트 레코딩을 기준으로 한 것이다. 파리 초연은 크고 아름다운 런던 공연이랑은 여러 면에서 상당히 다르다. 웨스트엔드판에는 발장의 주요 넘버 중 하나인 과 마리우스의 등 수많은 넘버가 추가되었고 시놉시스의 군데군데 세세한 부분이 수정되었다. 예를 들면, 파리 초연에서는 극이 La Journée Est Finie, 영어판의 At the end of the day에 해당하는 넘버부터 시작하고 장 발장이 석방되자마자 은식기를 훔치다가 주교에게 용서받고 고뇌하는 프롤로그 장면도 없었다 또한 [[에포닌]]의 그 유명한 <[[On My Own]]>의 멜로디는 원래 파리 초연에서는 팡틴이 부르는 넘버였다. 프랑스어 제목은 .[* [[https://youtu.be/yoAvyu6X6RI|사실 에포닌도 부르긴 했다.]] 그게 마리우스랑 같이 부르는 짤막한 듀엣곡이라는 게 문제지.] 대신 에포닌은 솔로곡으로 <[[https://youtu.be/4wnl3HTrANs|L'un vers l'autre]]>를 부른다. 이 흔적은 영어 공연에서 팡틴의 같은 넘버에서 On my own 테마가 나오는 것으로 남아있다. 이 때문에 웨스트엔드판은 프랑스 초연의 리바이벌이라 하기엔 스케일이 너무 커졌고 오히려 1980년 프랑스에서의 초연이 일종의 [[파일럿 방송|파일럿 공연]]처럼 인식되고 있다. 때문에 [[프랑스]] 뮤덕들은 정통성을 논할 때 영국 뮤덕들과 으르렁대기도 한다. 그런데 정작 작곡가와 작사가는 웨스트엔드 캐스트를 더 좋아하는 모양이고 1991년 파리 캐스트부터 나온 프랑스어판 가사들도 1980년 파리 초연보다는 웨스트엔드/브로드웨이 초연에 가깝다. 하지만 프랑스어판도 나름의 가치가 있다. 특히 가사가 그렇다. 자베르의 자살 넘버 <[[흑백논리|Noir ou blanc]]>는 소설의 문장이 상당히 많이 포함되었고, 후술하겠지만 가브로슈가 바리케이드에서 부르는 역시 원작에서 묘사된 것과 꽤 비슷한 가사를 가지고 있다. 아마 같은 언어라서 책의 대사를 가사로 옮기기도 훨씬 수월했을 것이다. 굳이 원작과의 연계성 뿐 아니라도 어린 코제트가 장 발장을 왕자님이라고 생각하다 커서 마리우스를 만나자마자 바로 "내 사랑의 왕자님"이라고 부른다던가 하는 등 가사에 괜찮은 떡밥들이 많아서 한번씩 찾아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무엇보다 컨셉트 앨범이나 초연을 들어보면 장 발장이나 자베르의 캐릭터 해석이 지금의 주류와는 확실히 다르다. 웨스트엔드판의 초연은 프랑스어판 공연의 번안버전이라고만 알고 있던 비평가들에게 전혀 다른 작품으로 받아들여지며 익숙치 않다는 이유로 그다지 좋지 못한 평가를 받았지만 입소문을 타며 대박을 터뜨렸고, 이후 [[미국]]의 브로드웨이에서도 히트를 치는 등 전 세계에 알려지게 되었다. 런던에서는 2013년 현재에도 웨스트엔드의 퀸스 시어터에서 꾸준히 공연되고 있으며, [[블러드 브라더스]][* 레미즈 이전까지 웨스트엔드에서 10,000회 공연을 넘긴 유일무이한 작품이었다. 블러드 브라더스가 초연이 계속 이어진 것이 아님을 생각하면 웨스트엔드에서 초연이 10,000회를 넘긴건 레미즈가 최초.]를 제치고 대극장 뮤지컬 공연 역사상 최장수 기록을 쓰고 있다.[* 흔히 흥행성적이 [[크고 아름다운]] 대극장 공연을 위주로 통계를 매기는 뮤지컬 업계의 특성상 오프 브로드웨이의 통계가 잊혀지기 일쑤고 실제로 많은 나라 프로덕션에서 레미즈를 소개할 때 역사상 최장수 뮤지컬 공연이라 소개하곤 한다. 그러나 소극장 공연을 포함한 정확한 통계를 내보면 오프 브로드웨이 뮤지컬인 판타스틱스가 레미즈나 [[오페라의 유령(뮤지컬)]] 같은 대극장 공연들의 기록을 무색케 하는 기록을 썼는데, 1960년부터 시작하여 2002년 1월까지 42년 17,162회라는 전대미문의 기록을 써버렸다.(참고로 오프 브로드웨이 롱런 기록 2위가 의 5,003회다.) 기획기간까지 생각하면 쉽게 말해 '''[[자유당]] 시절에 시작한 공연이 2002 한일 월드컵 직전까지 이어진 것'''이다.] 2019년 7월에는 퀸스 시어터의 리모델링으로 인해 퀸스 시어터에서의 오리지널 프로덕션 공연을 마무리 짓고 8월 10일부터 11월 30일까지 길구드 시어터(Gielgud Theatre)에서 콘서트를 한 뒤, 퀸스 시어터의 리모델링으로 이름이 바뀐 손데임 시어터(Sondheim Theater)에서 "21세기를 위한" 레미제라블이라는 타이틀 하에 회전무대가 없는 브로드웨이/투어 프로덕션으로 새로이 공연을 시작했으며, 현재에도 이어지고 있다. 브로드웨이에서는 웨스트엔드 초연이 시작되고 2년 후인 1987년 3월 12일부터 공연이 시작되었고 450만 달러를 들였다. 미국에서도 레미제라블은 대승을 거두었고 2003년 5월 18일 폐막할 때까지 토니상 8개 부문을 휩쓸었고, 수입만 4억 1000만달러가 들어왔다. 한 때 9.11 테러로 인해 뉴욕 관광객이 줄면서 관객수가 줄었으나, 2002년 10월 메킨도시가 폐막을 발표하자 그 때부터 폐막 전까지 관객수가 다시 급증했다. 애초에 3월 15일 폐막하려던 걸 2달 연장한 것도 이 이유이다. 한국에도 내한 공연을 왔었는데 2002년 7월 12일부터 8월 4일까지 [[세종문화회관]]에서 개최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